아래의 글은 불교학과 23기 학인 여러분들의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

<전북불교대학 문화재사랑방>에 실린

<정금이 학인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제가

학인 여러분들에게도 그 감동을 나누어 드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글쓴이의 양해를 구하여  올리는 것이니 학인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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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달 서명원 신부님과 간화선>

 

새벽 경기전에 가 보셨나요?

오늘 새벽에 전 갔습니다.  뚜벅 뚜벅 ....

6시쯤  문을 열더군요.

 

비에 씻긴 나무들과 흰구름 사이로 가을 하늘이 언뜻 보이고,

제 마음도 청량해지는 듯 하였습니다.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지난 일요일 서명원 신부님을 떠올렸습니다.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단아한 신부복을 입으신 신부님을 상상했답니다. 

 - 새벽부터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속 아파 고생 좀 했다는.....

 

그리고 이 밤에 다시 그 만남을 떠올립니다.

무엇이 심금을 울리는지........ 

무엇이 마음에 걸리는지를......

 

그 분의 무엇이, 그 분의 어떤 인연이

그 분을 머나먼 이국 땅으로 이끌고 부처님의 세계와 조우하게 했을까요?

 

인연의 힘에 운명을 느낍니다.

 

스님도 아닌 불자도 아닌 신부님께서

성철 큰 스님과 인연을 맺고 간화선을 통해

불자보다 더 불자답게 살아가시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어찌보면 신부라는 직책으로 화두를 받고

하나하나 화두를 해결해가며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신 것이 모순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선을 통해 불교와 가까워 지기도 하지만

더욱 자신의 근본에 철저해지시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개종이라는 말 자체도 무의미할정도로.....

 

불성에는 동양과 서양이 없고 종교의 간극도 없습니다.

이것이 대도무문아닐까요?

 

참선을 한다는 것은

고요한 사찰 내에서 가부좌를 틀고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배웠습니다.

 

생활자체를 선으로 생활화할 때

참주인으로서 나를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을 거라 봅니다.

 

신부님께서 가족과의 관계에서,

종교사이의 마찰 속에서  느껴야했던 '고통'을

공부로 승화시킨 경험담은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기분을 가지게 했습니다.

 

공부란 평화롭고 안정된 속에서 되는 것이라 여긴

제 어리석음을 꼬집어 말씀하신 듯....

 

하지만  성격이 급한 저는

꾸준히 화두를 붙들어 해결해가고

정기적으로 도반들과 정진하며,

스승님을 찾아 점검을 받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과제로 다가옵니다.

 

일요일 신부님과의 특별한 만남은

안그래도 부끄러운 저를 더 부끄럽게 합니다.

 

불성은 신부님이나 저나  다를 바 없는데

불자라는 사람이 왜 용맹정진하지 않고 이리도 게으른지...

어인 핑계는 그리도 많은지.....

 

법우님들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법우 여러분.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함께 5분만 시작해보시겠습니까?

 

제발 알았다고 해 주세요.

저, 꾸벅 꾸벅 졸고 있습니다......

제 꿈자리가 편안하기를 법우님들께서도 바라시지요?

 

마지막으로 담 기회에는 간화선과 묵조선에 대해 공부하여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