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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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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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과연 무엇인가? -전북불교대학인에게 고(告)함- 1. 글을 시작하며 전북불교대학은 일반적인 조직과는 달리 학인 모두가 주인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자원봉사 등의 형식일지라도— 대학일에 참여할 수 있고 동시에 발언권을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의견은 많아지나 그것을 통합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준은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다. 당연히 사소한 의견차이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갈등이 빈발했다. 이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분쟁 당사자가 아닌 사무처 직원의 입장으로서는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나친 침묵은 무관심에서 비롯된 방관(傍觀)일수 있다는 자책감을 벗기 어려워 이제라도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소견(所見)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부족하나마 이를 계기로 학인들간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의사결정과 관련된 민감한 사항을 거론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기에 논외로 한다. 대신 이와 관련된 서적으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비영리단체의 경영>을 추천하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2. 불교대학은 수익을 추구하는 영리단체가 아니라 공익을 추구하는 비영리단체이다 영리단체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윤(수익)을 추구하지만 비영리단체는 공익(公益, 사회 전체의 이익) 또는 공익(共益,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따라서 영리단체는 수익의 증대를 위한 능률성이나 효율성이 가장 우선시되지만 비영리단체는 능률이나 성과가 아니라 구성원 상호간의 유대관계가 최우선이다. 공익(共益 및 公益)을 추구하는 전북불교대학은 비영리단체인 종교단체이다. 3. 불교대학의 설립목적은 포교(전법)에 있지만 이는 대학의 존립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전북불교대학의 설립목적은 무엇인가? 우선 전북불교대학 학칙 제1조의 목적을 살펴보면, 본 대학은 종교단체 <부처님세상>의 부설대학으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배우고 익히어 보살의 삶을 구현할 지도자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다음으로 종교단체 부처님세상 정관 제1장 제2조의 목적을 살펴보면, 본회는 불교교육을 통해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보살의 삶을 널리 선양하며 불교의 대중화, 생활화 구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한마디로 전북불교대학의 설립목적은 보살행의 구현을 통한 불교의 포교(전법)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전북불교대학 구성원 각자의 자선과 봉사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성원의 결속과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어떤 조직이건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필요로 하지만 비영리단체에서는 유대관계 그 자체가 목적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영리단체의 구성원과 달리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共益 및 公益)을 추구하는 비영리단체의 구성원에게서 인간적인 불편함과 불쾌감을 무릅쓴 참여와 봉사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영리단체의 구성원은 인간적인 유대관계의 상실과 함께 이미 자신의 목적달성에 실패한 것이 된다. 알다시피 비영리단체는 자본이나 주식이 아니라 오직 사람으로만 이루어지는 조직이다. 사람이 없으면 조직은 곧 와해되는 것이다. 정관이나 학칙에 실려 있는 명목상의 설립목적이 분명 최상위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의 존립자체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는 사실상 조직의 생존인 것이다. 어떤 목표든 조직의 생존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생존 그 자체는 목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제외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 어떤 목표도 그보다 상위목표 앞에서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낱 의견(수단)차이를 빌미로 하여 목표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 대학에서는 법회 후에 점심공양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결정은 분명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 일요법회를 활성화시키고 그로 인해 전법(포교)이라는 대학설립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채택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최상위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중의 하나인 점심공양 제공이 그 보다 하위에 있는 구체적인 점심준비 및 제공방법(수단)에 대하여는 바로 상위의 목표가 되므로 이를 중간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주 당번을 정하여 교대로 음식을 장만한다든가 후식으로는 떡과 과일을 준비한다든가 하는 것 등은 모두 점심공양을 제공하자는 중간목표에 대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점심공양 제공이라는 합의된 중간목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의견에 대해서도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점심공양 제공이라는 중간목표가 그보다 상위목표인 대학발전에 저해될 정도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면 이 중간목표조차도 —최상위목표에 대하여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므로— 당연히 폐기되고 다른 수단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 생각엔 후식으로 딸기를 준비했으면 좋겠는데 누군가 다른 사람은 포도를 준비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을 경우 상대방과 나는 서로가 자기 의견의 합목적성(合目的性)에 대한 설득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관계자체를 단절시킬 정도의 갈등을 야기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과 나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성취방법(수단)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각자의 목표가 상대방의 목표에 의하여 방해되는 배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점심공양을 제공하기 위해 야기되는 모든 갈등은 점심공양을 제공하자고 이미 합의된 중간목표에 대한 방법(수단)의 차이일 뿐이지 목표자체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하거나 편가르기를 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대학의 존립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개인적인 자존심만을 앞세우기에 급급한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수단에 함몰되어 목적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자기무오류(自己無誤謬)의 착각에 빠져서도 안 된다. 설령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고 하더라도 상대방 또한 공동의 목표에 대해 가장 적합한 방안이라고 생각하여 의견을 낸 것이지 목표가 다른 것은 아니므로 의견차이를 빌미로 하여 목표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무처 일과 관련된 이야기도 간단히 짚고 넘어 가보자.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학일이라는 것이 사무처 단독으로만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일회적인 경우도 있고 지속적인 경우도 있지만 어느 경우에나 사무처에서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보다 더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비용절감 측면에서 일부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절차상의 번거로움과 업무수행의 지연으로 인한 비용이 더 큰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목표는 관계에 있는 것이지 성과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비능률과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학인들의 참여를 확대코자 하는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 우리는 적(敵)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반자이다. 영리단체이든 비영리단체이든 가장 중요한 자원은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시사하듯 조직의 구성원인 사람이 화목하지 않고서는 조직의 목표를 이루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조직이건 인화단결(人和團結)을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을 위한 조직이고, 사람에 의한 존재가치를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단체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의 감정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람과 사람의 감정은 모든 관계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어디로 가든 어떻게 가든 서울로 갈 수 있다면 어느 한 길(방법)만을 고집하지 말자. 대다수가 가고 싶어 하는 길(방법)로 가면 되는 것이다. 설령 그 길로 가는 것이 더 늦는다고 할지라도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다. 우리의 목표는 모두가 함께 가자는 것이지 빨리 가자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상대방에 대한 양보와 배려다. 우리는 적(敵)이 아니라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반자라는 것을 잊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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