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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두통 발병 과정
편두통 고생이 시작된 것은 건설회사에 근무할 때였다. 영문과 출신이다보니, 나는 해외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주로 근무했다.
국내 본사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급료는 2배가 넘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일은, 현지 경찰관들이나 교도소 관리들 내지 세무소나 행정 관료들을 상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그곳 생활은 극심한 긴장의 연속이다보니 너무도 힘들게 느껴졌다.
그 뿐만 아니었다. 뜨거운 사막과 달리 4계절이 뚜렷한 고국의 산야 , 그리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같이해온 가족들--- 이 모두를 보고싶은 그리움도 정신적으로 혹독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런 향수 병을 극복하기 위해 , 업무에 열중했다. 그 열중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학대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정신의 붕괴에 따라 육체적 건강의 붕괴도 뒤따르는 듯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어느 날 부터였는지--- 참기 힘들 정도로 강한 치통을 느꼈다. 어렵게 틈을 내어 치과를 찾았는데, 의사는 인도인 여자였다. 그녀는 구강에서 어떤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그녀가 나에게 들려준 진단과 처방 전부였다.
우리나라 의사들이라면 , 편두통을 의심하고 신경 정신과 진료를 권유했을 터인데----- , 그 인도 여자는 의사로써 전문성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무뚝뚝해서였는지 그런 권유를 하지 못했다.
2. 편두통 증상
귀국하자마자 치과에 들렸다. 그리고 치과 의사를 통해 편두통이란 질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치통에 매우 유사하기에 , 통증이 일어나는 경우 치통으로 오해하고 치과를 찾아오는 사례가 종종 발견된다나.
왼쪽 눈 바로 위에 이마 부분을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눈물이 나기도 하고 , 머리가 어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어지럼증은 배멀미를 할 때처럼 구토를 하게 만들기도 하고---. 왼쪽 이마에서 시작된 통증은 뒷 머리까지 전달되는데, 통증이 뒷 머리 부분에 이르면 핏줄을 강하게 끌어 당겨 쥐어뜯는 듯한 모습으로 변한다.
3. 병원 신경 정신과에서의 치료 내용
이런 통증 호소에 대해 병원에서는 긴장을 풀어주는 신경 안정제( 진정제)를 주사와 알약으로 투여해주곤 했다. 그 처방이 초기엔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통증이 사라지게 되면 , 대개 1년 정도 무사하게 지냈다.
4. 병원 치료의 한계로 극심한 고통
그런데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로 되돌아 왔다. 교사 봉급의 5배에 이르는 회사 급료를 마다하고 , 시골 교사로 돌아온 직접적인 동기는 일과 돈 중독에 걸린듯한 회사 생활에 대한 염증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시골에서 가족들과 생활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 휴일이면 화판을 메고 나가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하는 것이 어찌 좋아 보이던지!
운이 참 좋은 편이겠다. 천수경에 ' 내 뜻하는 바대로 모두 이루어진다.'( 所願從心悉圓滿)라는 구절이 있는데---. 내 삶을 돌이켜 보면 , 직장이나 경제 면에선, 내가 원하는 바대로 매사가 다 이루어진 것 같다. ( 만약 그 동안 내 모습이 초라해보였다면---, 이루지 못해서 초라한 것은 아니라, 원래 바라는 바가 초라했기 때문이다 여겨야할 것 같다! )
내가 외국에서 갈망했던 시골 교사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 행복해졌어야하는데--- 그 생활은 천국이 아니라 생지옥이었고 따라서 편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원인은 이사장 때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 은혜를 받은 그는 기독교 선교의 사명감에 불타오르게 되었다. 그 때부터 모든 교사들은 교회에 나가야하고 , 또 학교에서 예배를 보아야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려면 , 아예 학교를 떠나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강요가 되면 덕을 잃기 마련이다. 그 당시 나는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강요가 매우 찝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들어, 그 지시를 따르지 아니하자 , 사직을 권유받기 시작했다.
교내 예배가 있었던 다음 날엔 사직 요구가 뒤따르기에 예배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매우 침울해졌다. 이 때부터 편두통은 1년에 한번씩 재발하는 것이 아니라 매월 재발하더니 , 나중엔 겨우 1 주일만에 재발하기도 했다.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받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른다. 내 영혼 구제를 위해 그렇게 사랑의 폭력을 행사한 하나님의 착한(?) 양들이 , 약 2년 후 , 악마라 부른 나에게 항복하고 학교를 떠났다!
전교조에 가입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 자녀들의 부패와 폭력이 지나쳤기 때문이었는데--- 하나님 자녀들이야 이길 수 있었지만, 노 태우 정부의 물리력은 곧 바로 꺽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떠 난 후 머지않아 나역시 그 학교에서 떠나야만 했다. 전교조에 가입해서 적극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였다. 편두통이 재발했을 때 의사가 처방해주던 약들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 통증이 시작되면 그 고통이 어찌나 심한지 자살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5. 편두통을 극복하게된 과정
전교조 교육운동에 몰두하면 할 수록 정부 그리고 적대적인 보수 단체로 부터 강한 탄압이 왔다. 온 몸과 마음을 집중해서 일상 생활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느 일에 몰입된 삼매의 경지이련만---. 그러나 그 당시 내가 몰입한 경지는 탐진치 삼독 가운데 어느 부분과 관련이 있는 집착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유아의 경지였다. 따라서 탐진치를 떠난 참선의 무아 상태의 몰입 경지와 달리 건강을 극도로 괴롭혔다.
바로 이 때였다. 잡다한 일상 생활 하나 하나에 온 정신을 동등하게 집중하다보니 내 마음이 그 생활 잡사로 가득 차 바늘 하나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좁아졌는데 , 정 반대로 비워서 이 세상 모든 존재 나아가 이 우주까지 포함할 정도로 넓게 넓게 텅텅 비워보자고 작심한 것이---.
그렇게 시작한 참선이 내 마음에 큰 여백을 이루어갔다. 나아가 기적을 일으켰다.
내가 참가하기 시작한 참선 모임엔 교육청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나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기에 서로 피하려 노력해야할 인연이었는데---. 그들과 우연히 종교단체에서 만나 , 서로에게 적대적었던 과거 모든 생활을 내려놓고 함께 참선 수행을 시작했다.
참선이 시작되면, 처음엔 잡다한 일상 생활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는
입정(入靜)의 순간이 있다.
그렇게 생각이 비워진 다음, 그들은 화두를 들고 간화선에 몰입했다. 이미 스님에게서 화두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화두를 받지 않았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몸 구석 구석을 관찰하는 위파사나 선에 자연스럽게 열중했다. ( 나는 지금까지 화두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참선 시작 즈음에 편두통도 시작되었다. 그래서 바로 ' 머리 어느 부분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세게 아픈지' 자세히 눈을 감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왼쪽 눈 언저리에서 시작된 통증이 조금씩 다른 장소로 이동해 갔다. 그 통증의 이동 경로를 온 정신을 집중해서 치밀히 따라갔는데 , 어느 순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아니 ! 그 통증을 자세히 관찰해보고 있었더니, 서서히 농도가 가라앉다가 , 침묵 속에서 녹아 완벽히 사라졌다. 어찌나 그 흉악한 통증이 쉽게 사라졌는지!
그 이후부터 편두통이 발생하면 몸을 매우 편안한 자세로 가다듬은 후, 예전 참선 때처럼 통증을 객관화 시켜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2-3분 안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제 편두통 따위는 두려워 하지를 않는다.
6. 편두통이란 도깨비 실체
어느 사람이 밤에 길을 가다가 도깨비를 만났다. 그 도깨비는 바로 뒤에 따라오며 그가 내는 숨소리 , 발걸음 모두를 그대로 흉내냈다. 그래서 그는 큰 목소리로 교회 찬송가를 부르기도했고 주기도문을 외기도 했다. 그러자 도깨비도 똑같이 따라서 찬송을 부르고 주기도문을 암송했다.
그는 불경도 상당히 공부한 사람이었는데, 반야심경을 염송해 보기도 했다. 그러자 그 도깨비도 아주 유식해서 반야 심경을 따라서 염송했다.
이제 도저히 도깨비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야할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제 모든 것을 마음에서 비워 , 마음을 깨끗하게 만든 상태에서 임종을 맞이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길을 가던 동작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아 모든 사념을 비워 버리는 참선에 돌입했다. 다음 세상에선 그렇게 마음이 맑고 여유가 있는 훌륭한 인물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그러자 도깨비의 소리도 모두 멈추더니, 도깨비 그 자체도 사라졌다고 한다.
* 사실 밤길에 놓여있는 새끼줄을 뱀이라 착각하고 놀란 사람이 있다면, 새끼줄 잘못이 아니라 착각을 한 자신의 잘못이듯--- 편두통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실체는 없는 내 자신의 순간적인 착시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자세히 , 어느 부분이, 어느 정도 심하게 ,그리고 통증은 어떤 내용인지 바라보다보면, 실체가 없기에 사라져 버렸는지 모르겠다.
* 위파사나 참선이란 초기엔 몸 구석 구석을 치밀하게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내 마음 속 구석 구석을 관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마음 구석 구석을 관찰하면서 그곳에 쌓인 사념( 번뇌 망상)들을 객관화 시켜서 바라보기 시작하면 어느듯 청소( 참회 내지 비움의 과정)에 이르게 되고--- 그래서 참선 수행은 인간의 아름다운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과정의 노력이겠다.
이와 관련해서 내 편두통 통증이 사라진 원인을 추측하자면----모든 정신적 긴장감을 일으키는 생각들 , 즉 긴장의 원인들을 입정 단계에서 부터 제거함으로써, 두통이 해소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참선을 통해 편두통이 사라진 결과를 얻는 방법은 --- 종교적인 신비주의나 기적과는 다르겠다.
어떤 기독교 목사들은 신의 힘을 빌려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일구어냈다고 주장하곤 한다. 이곳에 제시한 편두통 치료는 그런 종류의 초자연적인 힘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의 문제'이자 '심리 치료의 문제'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따라서, '참선 수행을 어여삐 보시고 내린 부처님 가피라는 기적'으로 보는 것도 , 바람직하지 못하겠다. 그것도 일종의 종교적 신비주의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혹시 기독교의 기적이나 신비주의에 질린 사람들 대상으로 , 불교적 신비주의(?) 선전으로 오해할까 염려되어 붙인 사족입니다. 저는 어떤 종교인든지 기적을 이야기하면 뒤 돌아서 버립니다!
* 편두통의 고통이 워낙 심했기에 , 이 방법 제시로 혹시 그 생지옥같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이 '단 한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싶어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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