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념의 실천적 의미탐색을 위한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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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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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개념의 실천적 의미탐색을 위한 여정
1. 글을 시작하며
공개념의 이론적 의미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모든 사물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연기(緣起)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空)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연기(緣起)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 부르는 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과연(因果緣)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自性)이 없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空)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불자(佛者)들의 인식은 공개념을 단순히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관념적 개념으로만 한정시켜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나는 공개념의 실천적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몇 지식인들이 말하고 있는 공개념—여기에 소개하는 글들은 순전히 주관적 판단으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므로 만약 주제에 적절치 않은 내용이 있다면 이는 순전히 저의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불자 여러분께서는 기탄없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을 소개하고자 한다.
2.관자재보살께서 우리에게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이라고 말했을 때 이는 <A는 A가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있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종이는 종이가 아닌 다른 요소들, 즉 나무 햇빛, 비, 흙, 광물질, 시간, 공간, 의식 따위로 이루어진 물건입니다. 그것은 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의 공이면서 다른 모든 것으로 가득 차 있지요. 또한 우리는 금강경에서 <보살은 보살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참된 보살이다>라는 문장을 자주 읽게 됩니다. 이런 어법을 일컬어 <반야바라밀 변증법>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A라는 물건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A아닌 요소들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A는 A아닌 요소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A는 A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볼 때 우리는 A의 안녕이 A아닌 요소들의 안녕에 달려있음을 알게 되지요. 인간의 안녕이 인간 아닌 모든 요소들의 안녕에 달려있음을 보게 알게 되지요. 이렇듯 모든 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한 물건 안에 다른 모든 물건이 들어있어요. 실재를 깊이 들여다보아 그것의 <서로 안에 존재하는>본질을 발견하기까지 우리는 모양과 관념에 사로잡힌 바보로 살아가는 겁니다. 모든 상(諸相)이 상아님(非相)을 볼 때 우리는 부처를 봅니다. A의 A아닌 본성을 본 후에야 A의 실체에 닿게 되는 거예요. (틱낫한의 사랑법)
3. 존재계는 상호의존적이다. 일방적인 의존도 독립도 없다.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한다. 세상 만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전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너도 없고 나도 없다. 이것이 무심(無心)의 상태이며 무아(無我)의 상태이다. (오쇼 라즈니쉬의 이해의 서)
4.우주는 하나다. 그것은 통합체다. 어떤 것도 나누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것도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것도 분리될 수 없다. 분리는 불가능하다. .... 우리는 어우러져 있다. 실재는 통합체이다. 그런데 나 혹은 너와 같은 관념으로 인해 우리는 실재에서 이탈한다.(오쇼 라즈니쉬의 42장경)
5.모든 사물은 비존재라는 그림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존재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신(神)과 같은 개념이란 말입니다. ..... 그러니까 어떤 <존재>를 느낄 때 거기에는 <비존재>가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비존재를 깨닫지 못하면 존재를 제대로 본 것이 아닙니다. ...... <모든 존재는 그것을 받쳐주는 비존재의 향연>이라는 존 케이지의 말이 생각납니다. ...... 그러므로 공(空)이라 하든, 신(神)이라 하든, 무(無)라 하든 이러한 표현은 모두 이 세상을 다 품고 있다는 온전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모든 사물의 존재를 밝히는 지평선으로서의 (기독교적)하느님과 아주 잘 들어맞습니다. (프리초프 카프라 외 2인의 신과학과 영성의 시대)
6.분명하게 말하지만, 하느님이 없다면 우리 인간도 없겠지만, 다른 존재들이 없다면 하느님 역시 무의미성에 빠질 따름이다. 따라서 야훼는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with) 있는 자>로 보아야 더욱 정확한 맥락이라고 하겠다. 실로 관계성이란 존재론적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 야훼는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있는 존재>이며, <존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자>로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 앞으로 21세기 기독교 신학에서 설정될 신(神)과 세계의 관계는 언제나 <동반자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신(神)은 그 자신의 목적에 대한 물리적 성취를 위해 언제나 세계를 필요로 하며, 세계는 그 본성상 불완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신(神)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빈센트 홍의 범재신론)
7. 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生)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전 우주의 삶을 목표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모두 한 목숨인데, 단지 아주 지독한 싸움에 휘말려 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지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8.나는 나의 욕구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욕구는 다른 사람의 욕구와 어긋날 수 있고 따라서 이 욕구는 마땅히 조정되고 조절되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나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아름다운 신화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쾌락, 자신의 편의만을 추구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주변의 모든 이의 감정과 이해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 개인 혹은 자기 가족이나 집단의 쾌락과 이해를 도모하면서 살고 있는 만큼 그들이 의도하든 안하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목표를 간섭하고, 서로 해치고, 서로 손해를 끼치며 살아가고 있다.(토머스 머튼의 칠층산)
9.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 결과로서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초월>이라고 이름 지었다.(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10.초월이란 말에는 현실을 <뛰어 넘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반면에 포월(包越)은 <품어 안고서 넘는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포월적 신(包越的 神)의 이해>에서는 세계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함께 부비면서 이를 끌어안고서 넘어가는 모성애적 하느님을 말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하느님은 현실 세계와 언제나 함께 나아가는 그러한 인내(忍耐) 어린 동반자로서 하느님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21세기의 건강한 기독교 신학을 위해서 나는 이 같은 신(神) 이해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주장하는 바이다. (빈센트 홍의 범재신론)
11.인간의 참다운 본성은 타자(他者)와의 관계를 통해 고양되며, 이는 다른 모든 생물체 그리고 심지어는 목숨이 없는 삼라만상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어떤 자연현상도 본래 고유한 것은 없으니까 어떤 특성이든 주변환경과의 관계성 안에서 규정되는 것이다. ............. 불교는 궁극적 실재를 공(空)이라 말하며 동시에 끝없는 자비심(慈悲心)이라고도 합니다. 공(空)과 자비심(慈悲心)을 동일시한 것은 대승불교의 뛰어난 직관입니다. ....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는 자비심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비심을 베풀기 전에 우리 자신이 어딘가에서 자비심을 얻는다. 그러면 도대체 자비심이 나오는 원천은 어디인가. 그건 바로 공(空)이다.> (프리초프 카프라 외 2인의 신과학과 영성의 시대)
12.살아있는 시스템은 모두가 더 큰 생명체 안으로 포함된다. 살아있는 시스템은 모두 나름대로 개별성을 갖고 자기를 주장하는 독특한 면모가 있지만 그 전체는 또 온전한 화합체로서 더 큰 전체에 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하나의 전체로 통합시켜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기를 주장하기보다는 공존과 화합을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대단히 고통스러운 현실적 조건에 함께 묶여있기 때문이다. (프리초프 카프라 외 2인의 신과학과 영성의 시대)
13.나무가 나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신영복의 더불어숲)///..........///굳이 따지자면 <더불어>는 철학의 패러다임이 존재론보다 관계론쪽으로 변화해야 하겠다는 바람을 담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불어>란 방법론일 뿐 목표는 될 수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합니다. 그러나 방법 자체도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목표는 이상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나란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영복의 월간중앙win과의 더불어숲 출간 인터뷰)
14.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다음에 오실 부처님 이름이 미륵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미륵은 <사랑의 부처>라는 뜻입니다. 나는 미륵 부처님이 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의 잘못된 생활방식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좋은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틱낫한의 사랑법)
15. 글을 마치며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신(神)의 구원을 기대하거나 소극적인 수용자로서 살아서는 안 되는 것만큼이나 자기밖의 세상에 대하여도 방관자로 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가 그물처럼 얽혀있어 자기와는 전혀 관계없을 것 같은 다른 존재의 행복이나 불행이 언젠가는 자기 자신의 행복이나 불행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개념의 이론적 의미에서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다시피 공개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그 실천적 의미에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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