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후 25년 넘게 줄곧 선승(禪僧)의 길을 걸어온 두 스님과 인연(因緣)이 닿아 , 우리 부부가 함께 만행(漫行)을 하게 되었다. 여름엔 3박 4일 일정으로 남부 지방을 떠돌았다. 들리는 곳은 대개 대 선사(禪師)들의 수행(修行) 방식과 가르침을 이어오는 사찰이나 ‘주요 수행 방식으로 참선을 선택한다.’ 표방하는 곳이었다.
늦가을엔, 일정을 8박 9일로 늘였고, 장소는 따뜻한 제주도로 삼았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생활하다보니, 수행자(修行者)의 잘 다듬어진 일상생활 모습을 좀 더 치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또, 마주치는 여러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대화를 통해 , 그 분들의 내면에 흐르는 생각들을 엿 볼 수 있었다.
깨우침을 향해 들어갈 때 , 일반인들은 책을 읽거나 설법(說法)을 듣는 문자에 의존하기 마련이지만 , 선승들은 피나는 수행을 통해 들어간다고 한다. 수행의 문이, 문자의 문보다 더 좁고 힘들게 여겨지다 보니, 그 방법으로 도달한 깨우침은, 내용과 깊이에 있어서 더 뛰어나리라 여겨왔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세속적인 학문은 물론 기독교 신학마저 마땅치 않게 여긴 나머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분들이 발견되곤 한다. 그들은 야훼 신의 존재와 기독교 경전에 포함된 여러 가지 기적들(성령의 역사)에 대한 신앙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신앙을 다지는 방법으로, ‘신과 직접 나누는 대화 형식(기도)’을 가장 바람직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는데--- 지식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태도의 크기, 그리고 ‘신의 존재’와 ‘기적’이라는 매우 제한된 내용에 대한 신심(信心) 성장의 크기에 비례해서, 그들의 지적(知的)세계는 매우 좁아져 버린 듯 보였다. 덩달아, 합리적 사고(思考)의 문도 함께 굳게 잠겨 버린 것처럼 보였다.
불교에서도 문자를 버리겠다며 경전의 가르침이나 설법(說法), 그리고 세속의 철학을 가볍게 여기거나, 경멸(輕蔑)하는 태도를 보이는 이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함께 만행을 떠난 그 스님들 또한 ‘문자를 버려라.’ 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그 두 스님을 지도하신 큰 스님을 뵌 적이 있다. 그 분은 제(祭) 지내기를 거부하고, 사주(四柱)를 보아 주는 일이 없을 정도로 , 깨우친 이의 길을 엄격하게 지켜나간다( 엄수:嚴守)고 소문이 나있었다.
짝과 친지 되는 분이 그 분 선방(禪房)에서 지도받기를 원했기에, 단순히 운전수 일을 맡아 그 사찰을 방문했다. 차를 대접받는 자리에서였다. 그 스님이 나를 보자 ,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열심히 수행(修行)이나 하다 가라.’고 말했다.
“ 내 생명이 길고 짧은 것이야, 상대적(相對的)인 성질이 있다 보니, 보기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제 멋대로 요술(妖術)을 부리기 마련인데---, 그리고 이미 8년 전에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엔, 지금 살아있는 것도 ‘덤’이라 여기고 있는데---”
그런 생각과 더불어 여유도 생겼기 때문일까 ? 모처럼 예지(叡智)있는 분을 뵙게 된 것 같아 반가웠다. 평소 의아하게 여겼던 내용이 있었지만, 그렇게 눈이 열린 분을 뵙지 못해, 묻어둔 상태로 지내는 것을 매우 아쉽게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2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는, “깨우침이란 내용과 깊이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경허 선사(禪師)가 ‘코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깨우친 내용은,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깨우침이라 보아야 하는지?” 물었다.
근대 한국 불교에 있어서 , 선(禪) 수행의 가장 높은 봉(峰)을 이루고 있는 분이자, 성철 스님의 대 선배이신 분의 깨우침을 점검(點檢)하자는 말이니, 너무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들렸을 법 하다.
이어서, “ ‘주금강(周金剛이 촛불을 건네받으려 손을 내민 순간, 용담선사(龍潭禪師)가 혹 불어서 촛불을 끄자, 주금강이 깨우쳤다.’ 는 일화(逸話)가 있는데--- 그 순간 깨우친 내용 또한 선가에서 말하는 가장 근본적인 깨우침 입니까 ?” 라고 물어 보았다.
한국에 선(禪) 맥을 전해준 중국 불교의 주류(主流) 스님의 깨우침 또한 점검하자는 말이니, 기절초풍할 일이겠다.
그 분은, ‘ 문자를 버려라!’ 라는 말로,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두 번째 질문은---, ‘ 꿈을 어떻게 보는 것이 지혜로운 지?’였다. 그 분은, ‘번뇌(煩惱) 망상(妄想)이다.’라고 간단하게 답변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의심이나 토론을 봉쇄해 버렸다. 그저 그 분 해석을 무조건 검증이나 되새김 없이 암기하거나, 아니면 다른 분을 찾아 가르침을 받아야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교원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로부터 여러 수준의 질문을 받곤 했다. 수준이 교사에겐 매우 낮아 보일지라도, 질문자 입장에서 보자면, 매우 진지한 내용이겠다. 그래서 ,질문 자체를 막기보다는 그 수준에 맞추어 설명해주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런 성의와 비교해보면, 매우 아쉬운 대목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물론, 타 지역에서 조차 선수행하는 분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분이라 하기에, 그냥 돌아서 버리기엔 개운치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 되는 분들과 일정 기간이나마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기회로 여겨졌다.
함께 만행을 하다보면, 간접 방식이긴 하나, 그들이 그 큰 스님에게서 받은 가르침 내용을 파악하거나 가늠해볼 기회가 있으리라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만행을 시작하면서, 내 나름대로 ‘달성했으면’ 하고 바라는 바가 있었다.
우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느끼는 감격이,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보존하려는 의지를 품게 하고, 그러한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불이문(不二問)에 들기를 바랐다.
둘째로, 그 스님들이 흉악(凶惡)해 보이는 나찰의 헛소리에서도 법문을 들을 수 있고 , 중생인 우리 부부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려면, 승(僧)과 속(俗)이 하나가 될 수 있어야할 것 같았다.
스님들을 드높게 받든 나머지, 격의 없이 우리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닌 견해에 대해 제대로 점검을 받을 수 없게 되므로 , 우리 부부 입장에서도 각별하게 유의해야할 내용이었다.
세 번째는, 이런 변화를 통해, 생사(生死)구분마저 떠난 불이문(不二問)에 드는 여행이라면--- 선재동자의 순례(巡禮)에 버금가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한라산 기슭에 있는, 사찰을 방문하고, 오솔길을 걸을 때였다. 산책길 분위기야, 선방에서 차를 마시며 위엄을 갖춘 분위기와 아주 다르겠다. 그래서 지난 밤 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화제로 오르면서, 그 스님들의 꿈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볼 수 있었다.
‘꿈이란 미래 예언(豫言)과 같은 신비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이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구약 경전을 통해 그렇게 의식화(意識化) 된 것 같다. 그 경전엔, ‘ 신의 예언이 꿈의 형식’으로 자주 등장하니까---. 그 스님들 가운데 한 분도 그런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사물에 대한 이해가 다르면, 관련 사물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당연히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겠다. 꿈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르다보니, 꿈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도, 그 분과 나는 서로 달랐다
전북 불교대학의 강 건기 학장님과 성철 스님의 ‘유식론(唯識論)’ 강의 내용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눈, 귀, 코, 혀, 피부를 통해 받아들인 것을 , 5가지 식(識)이라 한다. 이 5가지 식이 원료로 뒤섞여 융합되면 한 차원 더 높은 지식, 혹은 행동으로 나아가는 의지(意志)로 변해지는데 --- 6식(識), 혹은 의식(意識)이라 부르는 것 같다.
‘나다.’ 하는 관점이 그 6식에 첨가된 것이, 7식(말라야 식)이라 불리는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 의식(意識)이고----, 8식(아뢰아 식)이란, 그 7식이 차곡차곡 쌓여진 것이자 ,프로이드가 말하는 ‘잠재의식(潛在意識)’과 연관되어지는 듯 했다.
낮에 활동하는 동안, 그 잠재의식(8식) 내용 가운데 특정한 일부 내용이, 전혀 예기치 않은 가운데 갑자기 떠오르면 ? 우리는 ‘과거에 대한 회상(回想)’ 혹은 추억(追憶)이라 부르는 것 같다. 잠이 들었을 때 그 잠재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나타나면 ? 우리는 ‘꿈’이라 부르는 것 같다.
잠재의식이 드러난 것(表出)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회상이나 꿈은 동일하련만--- 후자에 대해서만 , 종교적 의미나 미래 예언(豫言)적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란,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겠다. 이런 내 견해에 대해, 그 스님은 침묵으로 응대했다.
이어, 꿈의 성품에 대해 토론이 시작되었다. 침묵가운데 듣기만 하던 다른 한분은, ‘ 번뇌(煩惱) 망상(妄想)이자, 극복 대상’으로 말했다. 그 분들을 지도했던 큰 스님 견해와 일치하는 것 같았다.
‘ 강물이나 호수에 나타난 달의 모습이란 실상(實像: 진짜 모습)이 아닌 허상(虛像: 가짜 모습)에 불과하다.’ 는 주장에 대해선 매우 진지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허상을 보이므로, 쓸모가 없다거나 , 부수어 버려야 한다.’ 라는 주장엔 너그러움이 부족해 보였다. 극복 대상으로 여기다 보니, 대결 관계가 되고, 그런 대결 의식에서는 당연히 너그러움을 기대할 수 없겠다.
과거 내 생활(경험)과 쌓은 지식 내용을 비추어 주는 거울로 볼 수는 없을까 ? ‘흐트러진 면이 있는지?’, 알아볼 때 이용하는 일상생활 도구로---.
사실, 나는 꿈자리가 거칠고 뒤숭숭하거나 창피한 내용이 있으면, 잠재의식(8식)을 형성한 내 과거 요소들이 그리 거칠고 뒤숭숭했다고 여기며, ‘지금부터라도 과거와 다르게 생활하자.’ 다짐을 한다.
반면에, 꿈에 나타난 생활이 잔잔하고 평화롭다면 , ‘ 과거 내 생활에도 이렇게 고요한 부분이 있었나 보다.’ 라고 기쁘게 생각한다.
8식이 형성되는 과정과 기능에 대해서도, 견해 차이가 매우 크게 드러나 보였다.
그 분들은 그 과정을 , ‘번뇌의 때가 끼어가는 타락 현상’이자 말살(抹殺), 정화(淨化)되어야하는 대상으로 보는 듯 했다.
그러나 , 6식을 근본으로 해서 구성된 7식, 그리고 그 경험들( 7식)이 8식이라 불리는 창고에 저장되는 과정은---- 개인의 의지(意志)가 끼어들 수 없는 자동 활동의 속성이 있지 아니할까 ?
시냇물이 흐르거나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과 같은 자연의 작용이란, 선악(善惡), 호불호(好不好) 내지는 윤리 도덕의 시비(是非)를 초월한 자연 활동이겠다. 따라서 ,8식의 누적 과정은 , 시비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여 진다.
사실 육체의 생존이란, 6식의 원활한 작용의 결과이겠다. 따라서 ,살아 숨을 쉬고 있는 한, 8식의 축적 과정을 막을 수가 없겠다. 그러하기에 , ‘감각기관엔 죄가 없음’을 일깨워 주는 분들도 간혹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고무지우개로 글자를 깨끗하게 지워 버리듯 , 치열한 수행을 통해 8식(잠재의식)을 철저하게 없애버릴 수 있다는 주장이 과연 합리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 목표가 바람직한지’, 또한 다시 생각해 보아야할 것 같다. 말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불필요한 헛수고이자, 매우 인위적인 조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려(靜慮)에 들었을 때 주변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에 대해 못 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없애기 위해 싸우는 것에 비유되려나? 그렇게 대자연과 싸우는 것은, 마른 맨 땅에 박치기를 하는 무모함으로 보여 왔는데---.
그래서 과거에 쌓은 경험이나 지식( 8식)을 온전히 지닌 체, 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판단하는 지혜로운 상태와 고요함이 바로 해탈이 아닐까 ?
이어서, 제 8식의 성품에 대해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 분들은 , 성철 스님의 백일 법문 상권에 나오는 유식론 가운데에서 언급된 내용- 즉 ,‘ 8식이란 해탈하지 못해 윤회하는 영혼’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 화두(話頭)를 들고 탐구하다보면, 그 8식이 미세망념(微細忘念)까지 모두 녹아서 맑아 질 수 있으며 , 그 상태에 도달해서야 만이 견성 해탈(解脫)에 이르는 것이자 ,다음 세상에서의 윤회(輪回)에서 벗어난다는 견해도 ----
그동안 , '윤회의 사슬'이란 표현을 자주 들어왔다. 그 말엔, 시간상으론 '몸이 죽은 후'에, 장소 상으로는 '극락(아미타 세계)과 지옥' 내지는 다시 태어나는 세상--- , 주체(主體)는 , '영가(靈駕)라는 3가지 요소 개념이 내포되어있는 듯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이 삶속에서, 선(善)하고 바르게 판단하고 살면 즐겁고 편안한 천국에 있게 되고 , 거짓되고 악하게 판단하고 살면, 고통스런 지옥에 있게 된다고 보자면--- 윤회란 매일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것이라 추론되어진다.
그런 윤회가 아니라 , 죽어서 천당이나 지옥 사이를 오고 가거나 , 다른 시간과 장소에 다시 태어남과 같은 종류의 윤회는 ---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나는 존재 유무(有無)를 말할 위치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가장 위대한 인간이 했을지라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는 없다!
더더구나, 윤회의 주체로 영가의 존재를 내세우고 , 그 영가를 지옥에서 극락으로 이끌어가는 천도(遷度)제를 지내는 내용을 말하면---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자동 저장된 과거 경험 내지는 정보’란 낮은(?) 단계로, 8식을 질질 끌어 내린 결과 , 영가가 있다는 견해와 윤회를 부정하는 내 견해란? 그 스님들에겐 , 정도(正道)에서 한참 어긋난 ,이를 테면 사도(邪道)에 든 것으로 보였나보다! 그리고 바로 문자가 사도에 빠지게 만든 원흉(元兇)이고---. 그래서 그 스님들은 이런 견해를 듣고, 펄쩍 뛰었다. 그리고 ‘문자를 버려야 한다.’고 다시 한 번 일갈(一喝)을 했다.
내려치려는 주장자(拄杖子)를 빼앗아 , 오히려 되받아 후려치는 격이랄까 ? 내가 존경해온 성철 스님이지만, 그 두 스님에겐 우상(偶像)으로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베이컨이 말한 종족(種族)의 우상(偶像)이란, 자기의 편견(偏見)에 맞는 사례에 마음이 사로잡힌 상태를 말한다. 자신과 견해가 다르면, ‘이단(異端)’이라 적대시하는 종교인들에게서, 종족의 우상에 빠진 모습은 흔히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또 그는 극장(劇場)의 우상(偶像)도 말했는데--- 무대 위에서 인기 있는 배우가 보이는 요술이나 허구에 대중이 미혹(迷惑)되듯이, ‘위대하다.’ 소문이 난 큰 인물이 주장한 잘못된 논증이나, 표현에, 미혹되는 현상을 지칭(指稱), 비판한 내용이겠다.
‘ 이 자리에서 성철이라는 마구니를 죽여 버리고, 그가 한 말도 그와 함께 묻어버리자.’ 고 제안하자, 그 두 스님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나 같은 시골 농부가 제안하는 내용이니 당연히 감동으로 다가 올 리 없겠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셨을 때, 그 분과 나는 전혀 마주칠 기회가 없었기에, 그 분에 대한 원한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스님이 도달한 자기 통제 능력과 해박한 지식은 , 인간의 몸을 지닌 상태론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로 보여,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러나 그 분 수행 방법이나 목표에 대해선, 내 나름대로 견해가 있고, 그 견해가 꼭 호의적일 수는 없다.
진언(眞言)의 신비적인 힘을 인정했기 때문일까 ? 그 분은 능엄주 염불을 중요하게 여기며 권고했었다. 그리고 번뇌 망상이라 여긴 꿈이 나타나는 잠든 상태를 아예 없애기 위해, 송곳을 턱 밑에 세우고 화두를 들고 있었던 것도, 후학들에게 매우 큰 장애를 준 듯하다.
이제 그 두 스님과의 인연이 정리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그 두 스님 가운데 한 분은 , 좌선(坐禪)을 매우 좋아 했다. 그래서 함께 길을 가다가 아늑한 장소가 발견되면 ,‘ 잠시 정진(精進) 합시다.’라고 말하며 좌선에 돌입하곤 했다.
그 분에겐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眞身) 사리는 각별한 신통력을 의미하는 듯 했다. 그래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 사찰에서 수행이 좋다고 주장했다.
바칼 리가 석존의 육체에 경배하는 것을 소중하게 말하자, 경배를 받는 당사자인 석존은 강하게 질타했다. 가르침을 보아야지 썩어 없어질 육체를 예배 대상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 깨우침에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리라.
초자연적 힘이란 신비롭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보면 , 꿈이나 , 진언(眞言),염불, 진신 사리의 중요성에 빠지기 마련이다. 나아가 힌두교의 윤회를 밑바탕으로 한 내세 사상( 아미타 사상) 이나 정토 사상(淨土思想 :미륵 사상)에 빠지고---.
문자야 버렸지만, 대신 그런 신비 세계와 유명한 선각자들의 가르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고 수 십 년 화두(話頭) 선에 몰두한 결과가 이러하다면 , 화두 선을 권고하는 중국불교 전통 수행 방식의 효율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 두 분과 함께 제주 미로(迷路)찾기 공원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들은 ‘바른 길 찾는 시합을 하자.’며 우리 부부만 남겨 놓고 각자 앞서 출발했다.
뒤에 남은 우리 부부는 한 방향을 정했다. 그 후, 갈라지는 길과 마주칠 지라도 우직하게 그 방향을 고수했다.
종점( 도착을 알리는 종을 치는 곳)에 먼저 도달한 것은 우리 부부였다. 그 종점(終點)은 평지보다 2-3미터 가량 높은 연단(플렡폼)이었기에 , 그곳에서는 길을 찾아 헤매는 여러 관광객들을 한눈에 모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서, 그 두 스님들도 발견했고 , 마음속으로 진지하게 그 분들의 성불(成佛)을 기원했다.